체호프, 단편소설의 대가이자 '현대 희곡의 아버지'
19세기 러시아문학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며 단편소설과 희곡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타계 120주기를 맞이하여 펴낸 『상자 속의 사나이』는 그의 중단편 작품 13편을 엄선해 수록한 작품집이다.
체호프, 현대 단편소설의 선구자
체호프는 주로 평범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일상의 단면을 포착하며 '열린 결말'로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단편에 일가견이 있었다. "간결함은 재능과 자매지간이다.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비결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는 데 있다"고 말하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의 가치와 미학을 구현하고자 했다. 가볍고 소소한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다룬 단편뿐만 아니라 보다 긴 호흡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편도 여럿 발표했지만, 장편소설 창작에는 나아가지 못했고 대신 희곡 창작에 꾸준히 열정을 쏟았다.
체호프, '현대 희곡의 아버지'
말년에 이르러 체호프는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 등 4대 장막극을 내놓으며 '현대 희곡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희곡은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상연되고 있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현대 단편소설 형식의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후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체호프' 레이먼드 카버, '캐나다의 체호프' 혹은 '우리 시대의 체호프' 앨리스 먼로, '교외의 체호프' 존 치버를 위시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네이딘 고디머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체호프의 작가 인생을 총망라한 중단편선
『상자 속의 사나이』에는 체호프의 대표적인 중단편 13편이 실려 있다. 1884년부터 1903년까지 발표된 작품들로, 곤경에 처한 불우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초기작,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중기작, 그리고 대표적인 걸작으로 회자되는 말기작 등 체호프 소설의 진가와 매력을 고루 만날 수 있다. 의사이자 환자로서 살면서도 쉼없이 창작을 이어간 체호프는 의학에 대한 애정과 소신을 작품에 담아냈다. 의사로서 경험한 인간의 생로병사와 열악한 의료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녹아 있으며, 이와 함께 결핵 환자로서의 체험도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암담한 현실에 대한 염세적인 인식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낙관적인 시선이 공존하는 체호프 특유의 통찰과 유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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