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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로브그리예 - 진 누보로망(새로운 소설)을 선도한 프랑스 소설

by 사서J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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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로망’의 선구자이자 전방위 예술가

알랭 로브그리예의 실험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진』은 20세기 중반 파격적인 문학 실험으로 ‘누보로망(새로운 소설)’을 선도한 프랑스 작가 알랭 로브그리예가 1981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양성적 매력을 지닌 젊은 여성 진(Djinn)에 이끌린 청년 시몽 르쾨르의 기묘한 행적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몽은 비밀조직의 요원으로 활동하다 실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수께끼의 인물들이 거듭 등장하고, 방향 감각을 잃은 이미지와 혼란스러운 시공간이 펼쳐지면서 독자는 궁극적으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가중되는 압도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 소설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의 프랑스어 교수 이본 레너드의 요청에 따라, 미국 대학생들을 위한 프랑스어 문법 교육용 텍스트로 집필된 『면접』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덧붙여 새롭게 펴낸 작품입니다. 총 여덟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프랑스어 문법의 난이도가 점차 높아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 문법 학습서로 시작되었으나, 오락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소설로 탈바꿈한 『진』은 로브그리예의 실험정신이 발현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어 문법을 소설의 원동력으로”

마침내 실현된 로브그리예의 오래된 프로젝트, 『진”

누보로망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로브그리예의 『고무지우개』는 1954년 페네옹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발표한 『엿보는 사람』으로 1955년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누보로망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는 줄거리의 명시적 전개나 성격의 주관적 묘사 없이 사물과 인물을 시각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전통 소설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앙티로망(반소설)의 기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로브그리예는 생경한 문학 실험으로 열렬한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는 한국에서도 두 차례 강연을 하였으며, 작품 『진』은 그의 국경을 넘어선 활약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가 예순을 넘긴 198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2001년에 발표한 『여행자, 텍스트와 한담 그리고 인터뷰』에서 『진』의 집필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미국 대학에서 현대소설 강의를 할 당시 프랑스어 교수들이 문법 교육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한 경험을 언급했습니다. 로브그리예는 프랑스어 문법을 소설의 원동력으로 삼는 아이디어를 15년 이상 떠올려온 프로젝트 중 하나로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을 벗어나, 나 자신 행방불명이다”

나와 너, 꿈과 현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이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세계

시몽 르쾨르라는 청년은 다른 이름으로 된 여권과 구십구 쪽 분량의 타자 원고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의 원고 내용은 그가 구인 광고를 보고 약속 장소인 황폐한 창고에 도착해 진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진은 시몽에게 자신이 속한 기계화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을 위한 임무를 부여하지만, 그 목적은 즉시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몽은 진의 지시에 따라 파리 북부역으로 가는 길에서 소년 장을 만나게 됩니다. 장은 죽은 듯 쓰러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며, 그의 누이 마리는 시몽을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이야기를 듣게 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모호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와 혼란스러운 시공간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특히 이 소설은 다양한 시점과 프랑스어의 시제 변화를 통해 독자에게 혼란스러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정체불명의 ‘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첫 장에서는 1인칭 화자가 현재 시제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후 여러 시제가 혼합되어 사용되며 독자는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로브그리예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했기에, 『진』은 강렬하고 인상적인 상황 연출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트렌치코트와 중절모를 쓴 인물, 고장 난 기계 장치로 가득한 창고 등 다양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독자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진』은 1993년 『어느 시역자』에 표제작으로 소개된 이후, 3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는 2011년 을유문화사에서 발간된 『엿보는 자』 이후로도 12년 만의 출간으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Alain Robbe-Grillet
알렝 로브그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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