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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 앨프리드와 에밀리 노벨문학상 영국소설 부모의 삶 레싱의 마지막 작품

by 사서J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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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의 마지막 작품

허구와 현실의 비극적 간극을 넘나들며 그려낸 부모의 삶

거장 도리스 레싱이 자신의 아버지 앨프리드와 어머니 에밀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픽션과 논픽션을 한 권의 책으로 구성한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제1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부모의 다른 삶을 상상한 허구로, 제2부는 전쟁이 남긴 외적·내적 상처를 끌어안고 아프리카 식민지 농장에서 고군분투했던 가족의 실제 삶을 담은 회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뇌졸중으로 투병하면서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레싱의 마지막 결실인 이 작품은 민은영 번역가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됩니다. 따스하고 애틋한 소설과 생생하고 통찰력 있는 회고적 성격의 글 각각의 특색을 살려 정확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소설 속의 부모와 현실의 부모

2007년 스웨덴 한림원은 도리스 레싱에게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풀어낸 서사 시인”이자 “분열된 문명을 응시하는 작가”라는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여했습니다. 1919년 태어나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페미니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식민지, 인종차별 등 20세기 인류 사회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레싱이 2008년 발표한 생애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자기 부모였습니다.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절반은 소설, 절반은 회고록이라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전개됩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잠시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각자의 짝을 만나 평생 친구로 남습니다. 잘생긴 크리켓 선수 앨프리드는 고향 농장에서 일하며 야무진 아내와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립니다. 똑똑한 에밀리는 런던에 가서 간호사로 일하다 저명한 의사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지만 그가 남긴 유산과 인맥을 활용해 교육 자선사업가가 됩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은 평화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에 너무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해외 전쟁에 자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태를 걱정한 앨프리드의 아이디어와 에밀리의 자금과 행동력이 만나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작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의 삶

제2부는 부모와 작가 자신이 현실에서 경험한 삶을 다룹니다. 부상병과 간호사로 병원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는 옥수수를 키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선전을 보고 아프리카 농장으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남로디지아의 농장은 경제적으로 성공하기에는 너무 볼품없었고, 이제는 농장을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족의 목표가 됩니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어 나무 의족을 사용하는 아버지는 끔찍했던 경험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나중에는 당뇨병까지 생겨 괴로운 말년을 보냅니다. 어머니는 식민지에서 영국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 남편을 돌보느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레싱과 남동생은 어머니와 멀어지게 됩니다.

부모가 살았던 에드워드 시대 영국과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아프리카 식민지의 생활상을 보여주며, 찬란했던 대영제국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모든 전쟁을 종식할 전쟁’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별칭이 무색하게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이번에는 남동생 해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게 됩니다.

두 세계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충격

『앨프리드와 에밀리』의 절묘한 구성은 극적 대비를 이루며 독자에게 두 세계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충격을 안깁니다. 읽는 순간 눈앞에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듯 따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제1부는, 레싱의 대표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의외라고 여길 만합니다. 레싱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천진한 아이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전쟁이 남긴 부상과 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실제 아버지와 달리, 소설 속 앨프리드는 아버지의 평생소원이었던 영국 농부로 살며 장수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산층처럼 살고 싶은 욕망과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했던 어머니는, 소설 속에서 자녀는 없지만 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 자선사업가로서 사교계에서 존경받습니다.

허구의 삶에도 존재하는 슬픔과 상처

그러나 이 작품의 목적이 단순히 허구와 현실을 대비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면, 부모에게 선사한 허구의 삶에도 그 나름의 슬픔과 상처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앨프리드에게는 버트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앨프리드 부부는 술집으로 버트를 찾으러 다니고 그가 제대로 치료를 받도록 애쓰기도 합니다. 또한 기나긴 평화에 질린 아들들이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나갈까 노심초사합니다. 에밀리는 남편을 갑자기 잃고 재산을 탐내는 친척들에 맞서며 자선사업을 운영합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마음 맞는 배우자를 만나거나 자식을 얻지는 못해 아쉬움을 느낍니다.

행복과 비극의 공존

제1부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은 제2부의 삶이 오로지 비극만은 아니라는 사실로 연결됩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은 때로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경이로웠고 아버지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레싱은 본국에서 정규교육을 받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평탄하지 않은 유년시절이었지만 식민지 농장에서 보낸 그 시절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레싱이 이후 인종, 계급, 성별의 격차에 항거하는 지식인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강력한 작품

레싱의 작품 목록 중에서도 『앨프리드와 에밀리』가 특별하게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만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말년에 이른 레싱이 평생 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부모의 전기이자 작가 자신의 전기이기도 합니다.

화해의 여정

“여전히 이렇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유산에서 헤어나려고, 자유로워지려고 애쓰고 있다. (……) 내가 글로 쓴 그대로의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이 내가 빚어준 삶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좋겠다.” - 도리스 레싱

어린 시절, 레싱은 아버지의 전쟁 경험담이 듣기 싫어 귀를 막았지만, 그 이야기들이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서는 달랐습니다. 어머니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그 정당성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레싱은 자신과 남동생에게 집착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많은 딸들이 그러하듯 레싱 역시 “나는 어머니처럼 되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며 격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레싱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시대의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앨프리드와 에밀리』가 발표된 2008년, 레싱의 나이는 거의 아흔에 달했습니다.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유산에서 헤어나려고,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 끝에 이 마지막 작품을 통해 마침내 목적을 이룬 듯합니다.

독창적인 형식과 구성

또한, 이 작품의 독특한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싱은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문학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으며, 이 작품에서도 그 실험적인 태도가 빛을 발합니다. 부모의 삶이나 전쟁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이미 무수히 많이 다루어졌지만, 픽션과 논픽션을 혼합하여 신선한 구성을 이룬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전혀 진부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흑백사진 역시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입니다. 특히 제1부 마지막에 위치한 「설명」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현실적 영감의 출처를 알려주어 자연스럽게 독자를 제2부로 이끕니다. 소설과 회고록을 따로 출간했다면 다소 밋밋했을지 모르지만, 두 가지 성격의 글을 결합해 더 큰 감동을 창출했습니다. 

도리스 레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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