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 해안에서 영국의 바닷가까지,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1948년 동아프리카의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나 1968년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잔지바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독립 직후 술탄을 축출하려는 혁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무슬림 주민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구르나는 유학을 결심하고 영국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바닷가에서』의 서술자가 전하는 “나는 난민이자 망명 신청자다”라는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는 “오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어딘가로 살러 가는 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의 진솔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두 난민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과거
이 작품에는 번갈아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두 명의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합니다. 둘 다 난민입니다. 예순다섯의 나이에 영국행 망명길에 오른 살레 오마르와 그보다 삼십여 년 앞서 영국으로 건너온 라티프가 그들입니다. 특히, 시인 겸 문학교수로 소개되는 라티프는 작가의 이력을 그대로 투영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이들은 잔지바르 출신으로, 수십 년 후 영국의 바닷가 마을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살레 오마르는 가짜 신분으로 영국에 입국하게 되었고, 영어를 못 하는 척하며 입국심사를 통과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한편, 라티프는 영어를 모르는 동향 노인의 통역가가 될 뻔하지만, 노인이 사용한 이름이 그의 아버지의 이름임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고향의 따뜻한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창문 너머 영국 바다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마주 앉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두 집안이 겪은 과거의 풍파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난민의 범위와 현대 사회의 이주 문제
구르나는 어느 강연회에서 “난민은 어디에나 있다. 아프리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외에도 『바닷가에서』에는 이주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살레 오마르가 개트윅공항에서 만난 유럽의 문지기, 난민기구의 활동가, 라티프가 동독에서 만난 경찰관 등 여러 인물들이 이주하는 삶의 복잡성을 증언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주가 생활화된 만큼, 누구나 넓은 의미에서 난민일 수 있습니다.
도식화된 관계의 해체
‘난민=아프리카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처럼, 도식화된 관계를 해체하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잃어버린 고향과 새로운 이주지의 관계는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는 파라다이스로 묘사되지 않으며, 새로운 터전인 영국도 부정적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라티프가 영국에서 경험하는 적대감은 살레 오마르가 고향에서 이미 겪었던 일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들의 시선은 공정하게 서술됩니다.
탈식민주의를 넘어, 인간 보편의 이야기로
『바닷가에서』는 식민주의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식민 지배자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가한 차별과 그로 인한 교육의 불합리성이 지속적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식민주의 또는 탈식민주의로 치환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상호텍스트성이 두드러지며, 다양한 문학작품이 언급됩니다. 구르나는 자신의 작품이 난민의 운명을 그리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문학은 특정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 양력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나, 1968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는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난민과 이주, 그리고 탈식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르나는 문학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사회적 문제를 넓은 시각에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댓글